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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청


사무엘상 3:1~9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경청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주님의 역사 2019년을 맞이하여 엘리와 사무엘이라는 두 선지자의 대비를 통해 ‘경청’의 삶을 묵상하며 도전합니다. 나이가 많아진 제사장 엘리의 때에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는’ 시대를 맞이합니다. 하나님의 소리가 멈추었고 백성들은 주님의 뜻을 알지도, 분별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져서 잘 볼 수 없었다는 본문 말씀은, 그의 노쇠함이 육적 상황일뿐 아니라 시대적인 상징임을 의미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십니다. 주님은 어린 사무엘에게 그의 뜻을 말씀하시며 새로운 시대를 여셨습니다. 혹시, 이 시대가 엘리의 때와 같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소리를 멈추고 있다면, 그래서 이 나라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는 저물어 가는 엘리의 때에 놓인 것입니다. ‘경청’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경청하는 자리에 머무르며 경청의 시간을 사수할 때, 세상은 알 수 없는 높은 하나님의 뜻을 보게 될 것입니다.

순종함으로 경청하는 자

선지자 엘리의 시대가 저물어가며,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세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기 위해 하나님은 경청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해진 때, 늙은 선지자 엘리는 자기 처소에 누웠습니다. 그러나 아이 사무엘은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은 여호와의 전 안에 눕습니다. 등불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사무엘이 성전 안에 누웠음은 언제든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장소에 자신을 내어 놓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경청과 순종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자신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따르기 원하는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세상의 소리와 내 안의 육신의 소리를 잠잠케 하고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구하며, 순종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일지라도 내가 원해서 행한 일과, 주께 순종함으로 행한 일은 ‘경청의 자리’로 구별됩니다. 내가 판단하고 계산해서 골라 택한 일이 아니라, 주님께 순종한 일이 되기 위해서는 경청의 자리에 머무르며 주님의 음성을 기다려야 합니다. 진정한 순종은 경청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멈추지 않는 예배와 기도로 끊임없이 주님을 높이고 그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는 것도, 사역을 위한 사역이 아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함입니다. 올 한해, 경청의 시간과 자리를 사수하길 축복합니다. 어두워지는 이 시대, 하나님은 내 처소 안에만 거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처소에 머무르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깊은 경청의 사람

두 번째로, 깊은 경청의 사람이 세워져야 합니다. 사무엘은 여호와의 음성이 들리자, 엘리에게 달려갔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처음으로 들었기에, 그는 주님의 말씀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이 세 번이나 엘리를 찾아가는 장면은 그가 국가적 선지자로 세워지기 위해 훈련해가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끌 선지자 사무엘을 하루아침에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음성을 분명히 듣고 대언할 수 있도록 사무엘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어려움에 놓였을 때, 습관적으로 사람에게 기대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먼저 나아가길 바랍니다. 주님 앞에 머무르며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3장에는 1세기 교회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며, 또한 어떻게 순종했는지 보여주는 사건이 등장합니다. 안디옥 교회에 담임목회자 위치에 있던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할 것에 대한 성령님의 음성이 임했고,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이런 큰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주님의 음성이 임하며 분별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진행되어지기 위해, 주의 음성을 경청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그의 뜻을 선포하는 부르심과 특권이 있습니다. 교회는 봉사 활동 같은 섬김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애인을 돕고,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일은 교회가 아닌 다른 종교단체들도 행하는 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리를 발함으로 시대의 방향성을 제시해야 합니다. 경청의 자리에 머무르며 주님의 음성을 분별합시다. 학교와 일터와 도시와 나라에 주님의 마음과 뜻을 대언하는 교회로 서길 기도합니다.

사무엘 같은 다음세대

본문이 도전하는 세 번째는 사무엘과 같은 다음세대를 위한 준비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새 영을 받은 교회, 다음 단계를 이끌어 갈 교회가 일어나길 기다리십니다. 이를 위해 교회 안에 영적 통합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부르심과 소망을 품은 통합입니다. 이 교회안에도 많은 어른분들이 계십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가 서로 다른 세대로 모여 전혀 다른 사회적 경험을 갖고 있음에도 성령안에서 하나됨을 누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겉사람은 후패할 것이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길 축복합니다. 자연적 섭리안에서 머리는 희어지고 주름은 늘어가나, 우리의 영은 성령으로 날마다 깊어지길 원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기억합시다. 민수기 14장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정탐꾼들과는 다른 영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인생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님과 소통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새 영을 받은 교회로 섭시다. 영적 통합안에서 새부대가 되길 원합니다.

여호와의 음성을 듣는 자녀세대 부모님을 신뢰하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자녀들이 주의 음성을 기다리고 경청하는 자들이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경청의 세대로 키워내기 위해, 다음의 두 가지를 점검합시다. 만약, 자녀들과의 신뢰와 순종의 관계가 깨져 있다면 그 첫 번째 이유로 자녀들의 마음에 노여움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부모가 되는 것은 누구에게나 첫 경험이고 그렇기에 미숙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인생과 자녀들의 시대는 너무나 급속하게 달라지고 있고, 그로 인해 의도하지 않았고 원하지도 않았으나 우리의 연약함이 자녀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아픔들이 서로 품어지게 되길 기도합니다. 우리의 관계안에 주님으로부터 오는 화해가 일어나야 합니다. 자녀들과의 화해가 이루어졌다면, 또한 점검해야 할 두 번째는 자녀를 우상의 자리에 놓지 않는 것입니다. 엘리의 집안에 심판이 내려지는 이유는 그의 아들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엘리는 그의 아들들이 범죄함을 알았으나 방관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귀하게 여겼습니다.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사랑하는 자녀들을 하나님을 경외함과 말씀으로 양육하길 축원합니다. 2019년, 하나님 위에 두었던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주님의 음성을 경청함으로 승리합시다. 주님의 말씀으로 하나될 때, 새로운 주님의 역사를 함께 이루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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