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갑주를 취하라3 - 진리의 허리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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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1-14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주님의 교회 ‘에클레시아’는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서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교회를 성막이나 회당이 아닌, ‘에클레시아’라 선포하셨습니다. 유대인에게 익숙하지 않은, 지극히 정치적이면서도 군사적인 이 단어로 교회를 선포하신 것은, 교회를 향한 주님의 분명한 디자인과 뜻이 있음을 말함일 것입니다. 수많은 무리가 모인다 할지라도, 오직 교회에게 주어진 하늘을 열고 닫는 권세가 없다면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로서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군대로 서며, 그들을 키워낼 사명과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입니다. 우리 중에는 노련한 군인도 있고 이제 막 신병으로 들어온 군사도 있을 것이나, 중요한 것은 모두가 주님의 군대로 부르심 받아, 그 정체성으로 모인 자들이란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에베소서 역시 말씀 곳곳에서 군대용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말합니다. 지난 시간, 우리는 이 본문을 묵상하며 끝까지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을 것과 또한 그를 위해 먼저 바로 서는 것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기 위해, 능력과 강하고 담대한 심령과 공격적 태세로 먼저 굳건히 서야 함을 잊지 않길 축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반드시 취할 전신갑주를 영의 눈으로 그리며, 여섯 부분 중 첫 번째로 언급되는 허리띠에 대해 나눌 것입니다.
<진리의 띠를 동여맬 허리는 우리의 중심이자 근간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명한 바울은 에베소서 6:14로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라 합니다. 전신갑주의 첫 무장으로 선포된 진리의 허리 띠를 말씀과 같이 매기 위해, 우리는 이를 진리의 띠와 진리의 띠를 동여매는 부분인 허리로 나누어 살펴보려 합니다. 허리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르는 우리 몸 전체의 중심축이자, 근간입니다. 우리가 서고 움직이게 하는 힘의 근원이 바로 허리에서 나옵니다. 사람의 기초이자 근본이 되는 허리는 생명체가 생명체로 존재하게 하고 생명체답게 활동하게 하는 생명의 근원인 것입니다. 생육하며 번성하라 야곱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창35:11로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하셨습니다. 역대하6:9 역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것에 대해 “네 허리에서 나올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말하고 있습니다. 허리로 표현되는 생명의 근원, 곧 우리 삶의 중심과 근본과 기초는 반드시 진리로 붙들려야 합니다. 허리가 무너지면 바로 서거나 걸을 수도 없으며, 눕는 것조차 괴로움이 됩니다. 우리의 중심에 진리의 띠가 매이지 않을 때, 그러한 고통 중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신령한 전신갑주를 취하여 입을 때, 그 첫 무장으로 우리의 근간과 중심에 진리가 띠 띠어져야 함을 기억합시다.
<진리의 띠 -성경은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중심에 매어야 할 진리의 띠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 첫번째는 성경이 변치않는 진리란 것입니다. 수천년이 흘러오며 전해진 성경은 살아있는 말씀이자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히고 번역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가장 많이 불태워지고 불법화되기도 했던 책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의 말씀은 오늘도 존재할 뿐 아니라, 여전히 능력으로 선포되고 있습니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표기가 달라졌을 뿐, 성경이 기록한 진리의 내용은 조금도 변함없이 역사 가운데 전수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능력으로 없앨 수도 없고, 사람의 방법으로 바꿀 수도 없는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 곧 영원한 진리입니다.
<진리의 띠 -성경은 66권 전체로 온전한 진리입니다.>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66권으로 하나 된 성경 전체가 진리라는 것입니다. 오늘 열방을 움직이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성경은 우주의 창조자시며 세상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존하여 주신, 그 전체로 온전한 책입니다. 다른 시대, 다른 저자들이 쓴 책들이 모여 66권이 성경 한권으로 집필되기까지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주관하셨습니다. 가끔 성경에 속하지 않은 외경, 또는 가경에 관심과 흥미를 갖고, 그것에 빠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혼미하고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주권안에서 온전한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오늘 열방에서 가장 새롭게 사랑받고 있는 성경인 아가서를 봅시다. 남녀의 사랑에 대한 묘사로 가득한 이 책을 두고, 과연 이러한 책이 성경에 속해야 하는지 많은 논쟁들이 있었으나, 주님의 다시오심을 준비해야 하는 때에 이르러 아가서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그의 신부된 교회가 단장하기 위한 여정을 보임으로 새롭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신약의 계시록이 다시오실 주님과 그와 하나 될 신부된 우리의 마지막을 말하고 있듯이, 구약의 아가서가 이 시대 교회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66권의 성경은 비평학적으로 접근하여 난도질 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이 성경 전체를, 온전한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진리의 띠 -성경은 이해하고 따르기 위한 바른 교리입니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취해야 할 진리의 띠는 바른 교리입니다. 교리란 성경을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 교회의 전통과 계승에 따라 전달된 말씀의 해석을 말합니다. 말씀은 나의 마음과 뜻에 따라 해석하고 적용할 대상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은 그를 기록한 저자가 명확한 목적과 뜻을 두고, 분명한 대상을 향해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를 무시하고 내 뜻에 따라 성경의 내용을 변개한다면, 이것이 곧 이단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그의 마음과 뜻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감동들을 주실 때, 우리가 받은 성령의 음성과 마음들이 주님 안에서 주님의 것으로 분별되고 열매맺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바른 교리안에 있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 안전한 말씀의 해석의 기반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안에서 성경으로 해석되지 못하는 말씀은, 혼미한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과 소리가 세상을 어지럽힐 때,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교회가 계승해 온 바른 교리로 주님의 말씀을 취하길 축원합니다.
<우리 삶의 근본을 말씀에 두어 충만한 생명력 안에 거합시다.>
결국 오늘 본문은 삶의 근본과 중심에 말씀을 두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삶에 내가 만들고 키워온 가치관과 철학에 따른 선택이 아닌, 말씀이 기준된 선택들이 있길 축원합니다. 말씀이 나를 위해 구부려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말씀에 이끌려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힘의 근원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이라도,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 달려갈 수 있는 능력은 우리 내면의 기초와 근본이 말씀으로 붙들릴 때 가능한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외우고, 묵상하길 축원합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매고, 조여, 말씀에 붙들려 사는 자가 될 때 충만한 생명의 힘이 흘러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