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 강해 20 <땅의 회복2>
마태복음 6:9-10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는 이 나라와 이 교회를 바라보며 축복합니다.>
“Ignite Japan” 을 기도로 선포하며 일본 열도를 통과한 3주간의 이번 여정동안, 두 가지에 대한 확인과 감사가 있었습니다. 먼저는 이 나라에 대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이 교회에 대한 것입니다. 이 나라의 시작을 기억하십니까? 지독한 식민지의 시간을 지나 냉전체제에 돌입된 열강 가운데, 우리는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되는 또 한 차례의 전쟁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하위 극빈 국가였던 이 나라가 고물고물 움직이는 듯하더니, 세계 어느 나라도 경험해보지 못한 속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이루어 낼 수 없는 기적이 있는 이 나라가 하나님의 섭리안에 있는 것을 믿습니다. 기독교를 기반으로 국가의 기초가 세워지고, 선교 역사 100년이 채 안되어 인구대비 가장 많은 선교사들을 열방에 보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오늘 이 나라에 불고 있는 광풍속에서 우리는 이 한반도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을 신뢰해야 합니다. 주께서 시작하시고 주께서 보존하신 이 나라를, 오늘 주께서 다시 정화시키신다고 믿습니다. 이제 곧 다가올 전 세계적인 바벨론의 시스템에 맞서, 이미 엔타임을 경험하며 그를 통과한 북한의 교회와 일본과 중국의 교회가 한 영안에서 하나되어 예루살렘까지 복음으로 전진하는 날을 바라봅니다. 원수는 이를 두려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바라보며 그의 나라와 뜻이 이루어지기까지 앞서 준비합시다. 이제 하나 된 한반도와, 일본과 중국의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움직이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또한 감사할 수밖에 없던 것은, 그의 분명한 뜻을 따라 이 교회를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을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인 우리를 통해 일본 땅의 목회자들이 회복되고, 성도들이 본질을 향해 마음을 정하며, 새로운 열정으로 일본 열도 곳곳에서 교회들이 다시 일어나는 일을 하나님께서 행하셨습니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드림의 문화가 없는 일본 땅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한 결정과 그를 위한 헌신의 고백들이 쏟아졌고, 교회를 위한 헌금들이 모여 열악한 환경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역을 해야만 하는 일본의 목회자들과 어려움 가운데 놓인 교회들을 섬길 수 있었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일본의 교회를 섬기는 이 일에, 우리를 사용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 영원한 행복안에 우리가 거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며 시작된 마6:9~13의 주기도문은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선포하신 마6:33의 말씀으로 압축되어 질 수 있습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로 맺어지는 주기도문 9~10절의 간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는 기도의 본질에 대한 말씀과 연결되며, 일용할 양식과 죄 사함, 시험의 문제에 대해 간구하는 11~13절의 말씀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이는 영적 공급과 용서와 죄의 문제도 사실은 ‘주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때 더하여지는 것들’ 로써, 본질적 기도 제목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10절의 하늘에서 이루어진 ‘뜻’과 33절의 그의 ‘의’의 관계입니다. 10절의 뜻은 “WILL”, 곧 하늘에서부터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의지를 말합니다. 반면 33절의 의는 “RIGHTEOUSNESS”로, 하나님의 공의를 말합니다. 하늘에서 이미 성취된 하나님의 의지가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기도할 때, 그의 의지의 결과가 이 땅에서는 공의와 정의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땅을 바라보시며 무엇을 원하고 계실지 생각해봅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주를 경영하시는 창조주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인류 역사를 시작하신 그의 뜻, 그의 의지는 과연 무엇일까요? 아담을 비롯한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그에게서 돌이켜 도망가는 삶을 반복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의 저주 가운데 고통받을 때에야 하나님을 다시 찾았고, 아버지 하나님은 그런 당신의 자녀들에게 다시 찾아와 그들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이자 부정할 수 없는 오늘 우리의 모습이며, 또한 구약이 말하는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는 바로 우리가 있습니다. 창조주께서 이 땅을 바라보시며 원하시는 단 한 가지는 우리가 그와 함께 변하지 않을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하늘의 보좌에서 영원한 경배와 예배를 받고 계십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우뢰와도 같고 천둥과도 같은 소리들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영원히 계시며, 우주를 경영하시며,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은 무엇을 요구하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요한복음 17장의 주님의 기도와 같이, 삼위일체가 창세전부터 누리시던 영광의 코이노니아를 함께 나누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사 오늘도 그의 뜻을 그의 의지대로 이루어가고 계신 것입니다. 아담과 교제하기 위해 에덴을 방문하셨던 주님의 기쁨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깨달아지길 원합니다. 하늘의 우리 아버지는 흔들리지 않는 그의 의지대로, 우리가 다시 에덴에서 함께 할 한 날, 곧 왕이신 주님과 영원히 함께 거할 그 날을 오늘도 갈망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공의가 이 땅에 선포될 때, 우리는 온전한 삶을 회복할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His RIGHTEOUSNESS", 곧 그의 공의가 이 땅에 설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그의 "WILL"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할 “RIGHTEOUSNESS”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나라를 뒤흔드는 분노는 깨어진 공의로 인함일 것입니다. 우리가 이양한 권위와 권세가 특별한 특권층을 만들고, 그들을 위해 이용되었을 때, 무너진 공의로 인해 온 국민의 평화 역시 무너진 것입니다. 공의가 사라진다는 것은 군림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요, 그것은 또한 압제당하는 자, 억울한 자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서도 혹 이런 모습은 있지 않은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교회 안에 특권층이란 없습니다. 설령 특별한 어떤 자들이 있다 한다면, 그들은 모든 이들의 삶과 기쁨을 지키기 위해 더욱 헌신된 자들일 뿐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시편45:6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주님의 보좌는 영원하며 또한 공평한 주권, 공평한 나라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 땅의 법이며, 또한 하늘의 법인 말씀입니다. 모두를 보호할 수 있고 그래서 모두가 지켜야 하는 기준, 법과 말씀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아모스 선지자가 일어나 외친 것도 이것입니다.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찌로다” 아모스서의 핵심은 정의와 공의를 회복하는 것, 바로 말씀과 예배와 기도의 본질로 돌아가 우리 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이 한 주간 내 안에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특권 의식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오직 말씀을 따라, 그의 뜻을 구하는 자들 되어야 합니다. 혼란한 이 나라의 오늘, 하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교회로 인해 진리안의 평강이 흘러가게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