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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과 빛의 비밀 2

마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 그리스도인의 두 가지 정체성, 소금과 빛

1) 소금과 빛의 모순적 정체성

소금은 녹아 사라지며 짠 맛을 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맛으로 존재를 드러냅니다. 산상수훈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첫 번째 정체성입니다. 사라진 듯 한 소금처럼 가진 것을 빼앗기는 듯 할지라도, 십자가의 방법으로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빛은 드러나야 합니다. 감춰진 존재가 아니라, 어둠 위로 번쩍 들려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두 번째 정체성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소금처럼 녹아져야 할 정체성만 주신 것이 아니라, 빛처럼 분명히 드러나야 할 정체성으로도 부르셨습니다. 세상이 어두울 때, 그래서 생명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빛이 그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짠 맛을 잃은 소금이 버려지듯 빛을 내지 않는 성도 역시 세상에 짓밟히는 비참한 꼴이 될 것입니다.


2) 소금과 빛의 위치

소금과 빛은 드러나는 방식 뿐 아니라, 위치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를 세상의 소금이라고 칭하신 본문 13절 말씀에서, ‘세상’은 ‘테스게스’란 원어로,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 지구, 인간 세상을 뜻합니다. 즉, 소금의 자리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십자가를 살아냄으로 짠 맛을 발산하는 사명입니다. 이것이 소금이 뜻하는 대사회적 관계로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나 빛은 자리는 이 땅과 인간사를 넘은 대우주적 관계로 확장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14절 본문의 세상은 ‘코스무’란 원어로, 공중권세가 역사하는 하늘, 우주, 영적 세계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우주와 영적 세계의 빛으로도 존재해야 합니다. 보이는 인간 세상에서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뿐 아니라, 영적 세계에서도 빛으로 어둠을 드러내는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3) 빛으로의 역할 -하나님을 보이라

빛의 헬라어는 포스(PHOS)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오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드러낼 때 주로 사용됩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4).”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세상을 밝힐 뿐 아니라, 세상의 근본이 되는 빛. 우리가 밟은 이 땅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 존재하고 영향을 미치는 빛. 이 생명의 빛이 우리에게 임했습니다. 우리를 통해 이러한 하나님의 빛이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안의 빛이 세상을 비춤으로 하나님의 존귀함과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을 드러낼 때, 하늘의 역사가 작은 우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2. 빛을 가로막는 요소

1) 전통과 인습-산

본문에서, 우리가 빛을 발하지 못하도록 막고 방해하는 두 가지 요소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는 산입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여기서 산은 예루살렘, 모리아 산을 뜻합니다. 유대인이 사랑하는 장소, 하나님의 성전과 성산의 자리,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바로 그 곳입니다. 거룩하고 신성한 산이 어떻게 하나님의 빛을 방해할 수 있을까요? 이 말씀은 우리가 지켜왔던 ‘종교성’, ‘율법적 요인’이 생명의 빛을 막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전통과 율법에 묶인 종교는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우리 안에 체질화 되어버린 종교적 전통과 율법적 행위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만든 인습과 전통의 종교적 틀에 예수님을 가둘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만든 틀을 깨뜨리고 율법적 행위를 버림으로 진리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2) 육의 기질

두 번째 빛을 가리는 요소는 ‘말’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여기서 말은 약 9리터의 곡식이 들어가는 흙 항아리 그릇으로, 빛을 가로막는 우리의 육신, 육적 기질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오르가 발하여지도록 자신의 한계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 안에 부어진 포스가 감추어지지 않도록, 의지적으로 육의 항아리를 깨뜨려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와 예배와 금식의 삶이 중요합니다. 내 육적 기질을 깨뜨리기 위해, 나를 죽이는 십자가의 자리로 가야 합니다.


3. 빛의 결과 -아버지께 영광이 돌아가는 착한 행실

우리가 세상의 빛으로 설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집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본문에서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칭찬과 칭송을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칭송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2) 착한 행실

성경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착한 행실’을 도덕적인 행위라 말하지 않습니다.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행4:9).”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행11:24).”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1:6).”

착한 일은 병을 고치고 구원의 기적을 일으키는 일입니다. 착한 사람은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죄와 사망의 저주가 끊어지는 역사가 착함의 역사요,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는 자가 착한 자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빛으로 ‘착한 일’을 함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냄을 뜻합니다. 그 때 세상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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